조회 수 54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077022_1161765460.gif
패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 향년 95세)


감사와 찬양으로 자기를 이긴 여인 - 화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
(Fanny Jane Crosby, 1820.03.24~1915.02.12. 향년 95세)
"영혼의 찬양전도자 패니 크로스비" 책  
(가진수 지음, 아이러브처치)

세계 최고의 찬양 전도자이자 찬송가 시인.
미국인이 뽑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존경하는 금세기 최고의 인물.
한국인이 뽑은 가장 은혜로운 베스트 찬송가의 주인공.
파니 제인 크로스비는 1820년에 태어나서 1915년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구십 오세를 살면서 약 12,000여편 (구천 편)에 가까운 찬송시를 지었다.

패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는 1820년 3월 24일 미국 뉴욕 주 남동부 조그만 시골 푸트남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집안은 영국에서 건너온 전통있는 청교도 집안이었고, 하바드 대의 설립자 중의 하나이며 오랜 세월 동안 믿음의 선조들을 자랑하는 매우 신앙심 깊은 가문이었다.

생후 한 달 정도 되었을 때에 감기가 걸려서 갑자기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태어난 지 6주만에  눈에 눈꼽이 끼고 눈에 염증이 생겨 고생하다가 어느 돌팔이 안과의사를 만났는데 눈에 겨자 습포제를 바른 것이 화근이 되어 두 눈이 완전히 실명이 되어 평생 맹인으로 지내게 되었다. 

패니의 엄마 머시 크로스비는 어린 딸이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통곡하며 울었다. 패니가 돌팔이 의사의 실수로 맹인이 된 사실을 알고 교회와 동네 사람들은 그 돌팔이 의사를 찾아가 그를 처벌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마을을 떠나 버리고 말았다. 매우 가난한 집안이었기에 패니 크로스비는 눈이 멀게 된 이후로도 제대로 의사의 치료를 받아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생후 1년이 되었을 때 그를 극진히 사랑하던 아버지 존 크로스비 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기에 아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랐다.

패니의 엄마는 늘 생활고로 바빴기 때문에 패니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는 패니의 어린 시절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할머니는 패니의 좋은 친구이자 선생님이었으며 그녀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패니는 할머니에게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힘, 부드러움을 배웠다. 
할머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패니가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상세하게 설명해 주면서 성경말씀과 접목시켰다. 패니의 할머니는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가르치며 손으로 만져 보고 코에 대고 향긋한 향기를 맡도록 했다. 그리고 그 꽃의 색깔과 향기, 생김새 등을 일러주었다. 패니가 그 이름을 잘 익힐 수 있도록 자세히 묘사했다. 할머니는 모든 자연을 성경말씀과 연관 지어 설명해 주었으며 성경말씀을 암송하도록 지도하는 훌륭한 성경교사 역할을 했다. 심지어 무지개의 아름다운 일곱 빛깔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그 오묘한 모양을 전해 주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자연, 동물들과 식물들, 바람 소리와 물 소리와 해와 달과 별, 그야말로 온 우주와 모든 만물이 할머님의 교육 재료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그의 말씀으로 기록된 성경, 성경에 나오는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와 이적 기사들, 이런 것들이 패니의 마음 속에 새겨지면서 어린 패니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한 패니와 함께 하신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패니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의 말씀은 패니의 다른 오감과 상상력을 비장애인 이상으로 키워 주는데 도움을 주었고, 어린 시절의 이러한 감수성은 훗날에 그녀가 여류 시인이 되어 찬양시를 짓고 찬송가 가사를 작시하는데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다. 별다른 교육 시설도 없고 딱히 가르쳐 줄 선생님이 없었는데도 패니의 할머니는 매우 지혜롭게도 주위에 펼쳐진 자연과 우주 만물, 그리고 믿음의 가문에 대를 이어 내려오는 성경말씀, 단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그 어떤 현대 교육 시스템으로도 제공할 수 없는 매우 값지고 효과적인 조기 교육을 어린 패니에게 제공했다. 이러한 신앙과 자연에 대한 사랑은 그의 일생을 통해 다양한 재능과 찬양시 속에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 
패니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시편과 잠언, 룻기 등과 신약의 대부분을 암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패니의 할머니는 성경 뿐 아니라 문학작품도 많이 읽어 주었는데 패니는 거의 외울 정도로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할머니는 패니에게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자존감을 심어 주는데 최선을 다했다. 일리어드를 지은 호머와 실낙원을 지은 존 밀턴도 역시 맹인이었음을 알려 주면서 절대로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도록 가르쳤다. 어느 날 문득 패니는 자신의 삶을 커다란 목적을 위해 바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앞을 볼 수 없었고 막막하고 답답했다. 이대로 앞을 전혀 보지 못한 채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그 때마다 그녀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나와서 그녀가 기도하는 큰 바위로 가서 하나님께 위로를 구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패니에게 위로를 주었고 소망을 주었다. 그런데 패니가 11살 되었을 때 패니를 누구보다 가장 사랑하고 아끼던 패니의 할머니 유니스 크로스비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향방이 또한 달라질 수 있음을 여기서 볼 수 있다. 패니는 가난과 슬픔에 버려진 불행한 아이였다. 그러나 패니 크로스비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개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는 곳 마다 준비된 사람들을 붙여 주셨다. 지식의 배고픔으로 늘 허기진 어린 영혼의 긴긴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곧 현실로 그 길을 열어 주었다. 그 안타까움이 배움의 기쁨으로 바뀌어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배움의 갈증은 그녀로 하여금 밤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그녀가 시를 지을 때면 골방에 가서 먼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습관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이었다. 9살의 어린 나이에 크로스비는 "하나님 저는 소경이지만 저의 머리와 저의 손을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11살 때에 그토록 사랑하던 할머님이 돌아가시고 항상 배움에 목말라 하던 패니가 14살이 되던 해, 1834년에 뉴욕 입법부와 맨해튼에 새로 생긴 맹인학교에서 학생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했는데, 여기에 전액장학생으로 등록했다. 뉴욕주 맹인학교에 전액장학금으로 입학하게 된 패니는 그야말로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은 듯 지식에 대한 그 동안의 갈증을 해소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곳에서 크로스비는 자기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크로스비는 일평생 동안 주옥과 같은 아름다운 찬송시를 많이 작사했다. 

패니는 그녀의 다소곳한 생김새에서 쉽게 느낄 수 있듯이 평범하게 안락의자에 앉아 뜨게질이나 하면서 가끔씩 찬송시를 짓는 그런 생활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당대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무디와 함께 온 미국을 순회하면서 자신의 간증과 찬양을 통해 수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고 항상 주변의 불우한 이웃들을 손수 돌보는데 열심을 냈으며 평생의 삶을 통해 수많은 유명인사들과 교류하면서 매우 활발한 인간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패니 크로스비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패니 크로스비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충만한 은혜를 경험했다. 패니는 각계각층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시인, 소설가, 작가 뿐 아니라 정치인, 경제인, 대통령, 고아와 과부, 가난한 자, 거리의 사람들 등 그들과 교류하면서 더욱 충만한 열정을 보였다. 특히 그녀의 찬양시에 곡을 붙여 주었던 소중한 동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찬송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만들어 준 미국음악의 개척자 '로웰 메이슨', 패니의 서정시가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던 '조지 루트',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에서의 진정한 동역자가 되어 준 '윌리엄 브래드베리', '실베스터 메인', '로버트 로우리 박사', '윌리엄 하워드', '무디'와 '생키' 등 그녀에게는 소중한 동역자들이 있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성장해서 유명한 시인이 되었고 유명한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 대통령을 지낸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톤을 제외하고는 16대 링컨을 위시해서 24대 그루버 클리브랜드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19세기를 통치한 십여 명의 미국 대통령들 모두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정도로 유명 인사였으며, 그녀의 찬양 곡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의 애창곡으로 불려지고 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찬송가 279장)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찬송가 417장)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찬송으로 뽑혔고,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찬송가 608장)는 미국인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찬송으로 뽑혔다. 수 만명의 사람들이 이들 찬송에 은혜를 받았고 주님 앞으로 나온 사람들의 간증이 줄을 이어 소개되면서 패니 여사는 오히려 미국 대통령보다도 더 많은 영향력을 미국 국민들에게 끼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패니 여사는 전 생애를 통해 무려 12,000곡 정도의 찬양시를 발표했는데 출판사에서는 시 한편에 고작 1달러에서 2달러정도만을 지급했기 때문에 그녀의 생활은 항상 가난한 형편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항상 어려운 이웃들을 살피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첫 번째 찬양곡집을 출판하여 모은 얼마 안 되는 돈도 기꺼이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다. 한 번은 집세를 못 내어서 쫒겨 날 위기에서 한참 기도하는 중에 낯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10달러를 놓고 가는 바람에 위기를 모면하는 간증도 있다. 항상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패니 여사에게 하나님께서 도움의 천사를 보내 주신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던 맹인교수 밴 앨스틴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패니 크로스비가 38세 되던 해인 1858년 3월 8일이었다. 서로에 대한 깊은 헌신과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은 두 사람에게 그윽한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두 사람은 도시를 떠나 시골에 와서 자연을 즐기며 조용히 살았는데 시골의 공기는 그녀의 영혼을 더욱 아름답게 소생시켰고 그윽한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패니 크로스비는 결혼 후 곧 아기를 잉태하게 되었고 귀여운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엄마는 곧 아기를 잃고 말았다. 패니 크로스비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1859년에 일어났다. 패니 크로시비는 몇 달 동안을 아기를 잃은 슬픔에 잠겨 힘들게 보냈다. 이웃들로부터 받는 위로가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아기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내려와서 우리의 아기를 데리고 하늘 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기를 하나님과 그 분의 왕좌에 맡겼습니다.” 

패니와 밴 부부는 다시 뉴욕의 맨하튼으로 이사를 갔다. 패니 크로스비는 다시 모든 열정을 다 쏟아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 곳 저 곳에서 패니에게 찬송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패니는 일 주일에 6,7편의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곡에 붙일 가사를 그녀에게 부탁했다. 패니와 밴은 부부이자 서로를 돕는 배필로 행복하게 살았다. 패니와 밴은 많은 일을 했지만 허름한 집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가난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불평하거나 서로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주신 것에 항상 감사를 했다. 그러나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를 떠나 먼저 하늘로 갔다. 

패니 크로스비는 한 평생 수 많은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거듭해서 경험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었지만 그녀에게 그 대신 끝없는 에너지와 열정을 부어 주셨다. 6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려고 했지만 패니 크로스비는 더 많은 찬송시를 썼고 새로운 일들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에너지와 열정이 그녀의 심장을 끊임없이 고동치게 만들었다. 패니 크로스비가 90세가 되었을 때 영적인 삶에 있어서 최고의 해였다. 기쁨과 즐거움의 포도주가 넘치는 풍부한 시간들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 많은 청중들이 교회당을 꽉 메웠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15년 2월 12일 금요일 아침에 금세기의 가장 뛰어난 찬송가 작사가인 패니 크로스비는 95세를 일기로 조용히 하늘 나라로 갔다.

누군가가 이런 고백을 질문을 했다고 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가장 바라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눈을 뜨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랬더니 파니 제인 크로스비 여사는 “아닙니다. 저는 맹인인 이 상태가 좋습니다. 제 소원은 제가 하늘 나라가서 처음으로 눈을 뜨는 날 예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합니다.” 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영혼의 찬양 전도자 패니 크로스비" (가진수 지음, 아이러브처치)에서 패니 크로스비 여사의 삶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그녀는 매우 부지런한 일꾼이었다. 뜨개질로 목욕수건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암송했으며 골방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다.
2. 그녀는 모든 면에서 기억력이 매우 뛰어났다. 자신이 원하는 시를 언제라도 암송할 수 있었고, 예배드릴 때 찬송가를 모두 외웠는데 악보를 보는 사람보다도 더 정확하게 불렀으며 성경의 장 절을 정확하게 외웠다.
3. 그녀는 철저하게 남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부자이기보다는 부유한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서 평생 가재도구가 거의 없었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얼마되지 않는 재산도 모두 기부했다.
4. 그녀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슬퍼하거나 후회하거나 불평하는 말을 평생 하지 않았으며 그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알게 되어 매우 행복합니다" 라는 인사를 했다. 그의 기쁨은 전염성이 있었다 한다.
5. 그녀는 놀라운 영적 평안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가는 곳마다 불쌍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로하고 도왔으며 하나님께서 그녀와 함께 하시므로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다고 한다.
이 책의 마지막에 패니 여사의 생의 마지막 모습을 전하는 대목을 보면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데 너무나도 감동이 많다.

여사는 94세가 되는 10월의 어느 목요일 저녁에도 한 교회에서 지난 90년의 세월을 증거하는 집회를 열고 말씀을 전했다. 교회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모였고 강대상에는 많은 꽃들로 둘러 싸여 있었다. 여사는 장미꽃을 만지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전했다. "나에게는 평생의 삶을 통해 세 사람의 천사가 동행했습니다. 첫 번째 천사는 내 입맛을 감시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그 때마다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그렇게 하지 않는게 좋다." 저는 항상 천사의 말을 순종했고 대신 신선한 달걀과 과일 야채 어린 닭고기 그리고 차 한잔을 좋아했습니다. 두 번째 천사는 제 기분을 감시했습니다. 사람들이 내 기분을 상하게 하고 웃음거리로 만들 때마다 나는 언제나 빨리 잊어버리려 애썼고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습니다. 세 번째 천사는 제 입술을 감시했습니다. 그 때마다 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님..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세요. 내 입술을 주장하시고 입술의 문을 지켜 주세요." 그리고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이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궤사한 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 34:12-14)" 예배가 끝난 후 여사는 수백명의 사람들과 악수한 후 집으로 가서 차 한잔을 마신 후에 방에 들어가 하루의 삶을 감사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후 4 개월이 지난 다음해 2월의 어느 날. 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대필하여 작성하게 한 후에 여사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긴 잠에 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패니 여사의 죽음을 알리는 조전이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한평생 찬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던 한 맹인 여류 시인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그녀가 애창하던 찬송가처럼 하 나라에서 마침내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

재니 패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03.24~1915.02.12. 향년 95세)는 비록 육신의 눈이 감겼지만 영의 눈이 뜨여져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기 시작했고 항상 범사에 감사하였다. 그래서 그 분이 지은 찬송이 우리 찬송가에 무려 스물 두 편이나 들어가 있다. - 최고로 많은 찬송시를 지은 이가 크로스비이다. [참고로 - 그 다음이 찰스 웨슬레 Charles Wesly 13곡이고, 와트 아이작 Watts Isaac 12곡이다]

31장 -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40장 -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큰 사랑, 
144장 -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176장 -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240장 -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힘을 다해 마치고, 
255장 - 너희 죄 흉악하나 눈과 같이 희겠네, 
279장 -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288장 -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361장 - 기도하는 이 시간 주께 무릎 꿇고, 
380장 - 나의 생명 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384장 -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391장 -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417장 -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435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439장  -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454장 - 주와 같이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498장 -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죽음과 죄에서 건져 내며, 
531장 -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부르시네 부르시네, 
532장 - 주께로 한 걸음씩 왜 가지 않느냐, 
540장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한단 말일세, 
608장 -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찬송 못하나, 
615장 - 그 큰 일을 행하신 주께 영광 이 세상을 사랑해 주 오셨네.

어떤 사람이 화니 크로스비 여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참으로 많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해서 당신의 두 눈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 그 때 크리스비 여사 말했다.  "만약에 내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한가지 부탁을 할 수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지금과 같이 소경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구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다음에 저 영화로운 하늘 나라에 가서 뵙게 될 주님의 얼굴이 이 세상에서 제가 제일 처음으로 보는 얼굴이기 위한 것입니다." -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자기에게 주어진 시련에 굴하지 않고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좋은 계기로 삼았다.
참고 ;  [찰스 웨슬레 Charles Wesly, 13곡] 1707-1788
15, 22, 23, 34, 105, 126, 164, 170, 174, 208, 388, 522, 595
[와트 아이작 Watts Isaac, 12곡] 1674-1748
6, 20, 46, 71, 115, 138, 143, 149, 151, 249, 394, 353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딤전 4:4-5)

로그인

로그인폼

로그인 유지